82년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흔히 말하는 전두환의 3S(Sex,Screen, Sports) 정책이 정점에 이르게되었다. 82년도라면..그 유명한(?) 광주 항쟁이 일어난 다음 다음해이니.. 아직도 광주에는 그 상처가 짙게 배여있을터... 후에 필자가 군대 간후에 군대에서 만난 고참은 13년이 지난 그때에도..상처가 있다고 하니.. 고작 2년이 지난 후인데..더 많은 상처가 남아있었겠지.
몇년을 삼성, 오비가 나누어 갖더니, 그 이후로는 해태 타이거즈를 이길만한 팀을 못본듯하다. 올해 우승으로 V10이라니..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이 우승한 팀이 바로 KIA 타이거즈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광주항쟁으로 겪은 아픔을 야구로 승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해태 타이거즈는 무적의 신화를 쌓아올리며, 큰 역사를 써내려갔다.
희한하게도 국민의 정부들어서는 그 영향력도 차츰 차츰 없어지더니.. 어느덧, 기억속에 점점 잊혀져가게 되었다. 필자의 뇌리에서도 야구란 두글자는 점점 잊혀져갔고, 그러다..바로 올해 그 예전의 해태가 떠올랐다. 광주항쟁의 아픔을 야구장에서 푸는 것만 허용하던, 그 못된 정부와 대통령은 이미 한차례의 흐름을 지나 다시 그때 그 주역의 후손들로 채워져 있었고...
이쯤되면, 우파들에게서 좌파의 음모라고 나올법도 할텐데, 말이다. 하기사 어느 조직이나 파벌이 스포츠의 아름다운 드라마를 변하게 할수있겠느냐만.. 그래서.. 지난 우파 정권때 해태의 승승장구에 대해서 아무말도 못했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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